스파이럴-추리의 끈
영화계에 ‘포가튼’이라는 희대의 명작이 있다면 만화계에는 ‘스파이럴’이 있다!
제목만 봤을 때 자연스레 소년탐정이 연상되는 이 만화는 한마디로 ‘추리’의 탈을 쓴 오리지널 판타지만화이다. 그저 추리의 끈이라는 제목과 초반전개에 낚여서 정통추리물을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실망을 금치 않을 수가 없는 만화다. 개인적으로 김전일류의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제목에 낚여가지고 그저 기대감에 가득차 (개인적으로 매우 싫어하는)일본 순정만화스타일의 프로토타입 돋는 야리야리한 그림체, ‘10대에 세계적 피아니스트, 20대에 이름을 날리는 명탐정이었으며 미인 와이프도 나몰라라 2년째 실종중’이라는 화려한 이력을 가진 주인공의 횽아의 오글오글 보글보글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초반부 설정에서 이건 도대체 뭐하자는 만화인가의 수상한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긴 했으나, 간신히 다 참아주면서 봤는데 만화는 내 기대를 무참히 깨트렸어-_-. 사공도 별로 없는데 스토리가 점점 산으로 가며 화끈한 액션활극으로 변화하는 만화를 보며 제발 부탁이야 이러지마 제발 판타지로 가지마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한테 이래 이러면서 기도했는데 결론은 버킹검...이 아니라 과연 판타지가 맞았다. 이건 뼛속까지 판타지여...
중반이후로 갈수록 거의 구세주, 재림예수가 되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나마 초반에서는 약간 추리물 같은 뉘앙스를 풍기나 그나마 전 15권 중 논리좀 따져보겠다는 초반부에서도 이건 뭐 독자와 페어플레이는 그냥 포기해버리고 만다. 이에 초반부 사건의 해결과정은 주인공의 비범함, 나 좀 천재임을 보여주는 데 의의를 가진다(도대체 평범한 고교생이 겨드랑이 사이에 고무공 끼우면 맥박 멈추는 건 어떻게 아는 걸까). 추리물의 혼백은 독자와의 게임이며 그렇기에 추리물의 필수요소가 독자와의 페어플레이라고 생각하는 본인으로서는(이런 측면에서는 故 아가사 여사님이 독자와 페어플레이를 잘 하심) 매우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건 뭐 책장을 넘길수록 판타지야, 블레이드 칠드런이니 뭐니하니 하는 설정도 좀 적당히 현실성을 바탕으로 허구를 구성해야지, 나름 특수한 아이들의 비밀조직 비스까리하게 설정해본다고 한 것 같은데 참말로 애들놀음이 따로없네. 어린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총질하고 칼질하고 폭탄설치하고 잘하는 짓이구만요. 질풍노도의 시기인 학상~들이 참 좋아할 만한 설정인 듯. 추리의 그림자 끄트머리로 시작해서 만화는 액션모험활극이 되고 판타지로 끝난다.
작가입장에서는 나름 반전을 노렸을 것으로 보이는 다소 어이없는 SF적 결말까지 보니 내 시간 돌리도. 참 현실성이라고는 개미 눈꼽만큼도 없더라. 어질러진 방을 청소하는게 아니라 그냥 어질러진 채로 냅둔 채 방문만 닫아버린 기분이다. 아 내 어처구니... 뭐 그냥 애초에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모든걸 그러려니하고 부처님의 마음이 되면 뭐 다 이해할 수 있을 법하긴 하다. 다만 난 판타지인줄 몰랐을 뿐이고 읽다보니 스토리가 산으로 갔을 뿐이고, 영화 '포가튼' 봤을 때도 딱 이랬을 뿐이고.
